'첫 인간'을 만나 용은 인간과 대업 사이에서 처음으로 흔들렸고, 처음으로 대업을 잊었다. 처음으로 느끼는 사랑의 환희에 용의 시간은 신기루처럼 사라져갔다. 인간의 수명이란 용에게는 찰나와 같으니 이 달콤한 순간은 마치 흐르는 물처럼 사라질 것을 알아, 용은 그 시간을 소중히 하기로 다짐한다. 

허나 그 모든 것이 지나치면 독이 되는 것.

생각치도 않게 둘 사이에 생긴 후계는 독이 되어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어미를 죽이고 태어났다.

태어난 것에게도, 이미 잃은 것에게도 죄를 물을 수 없어 괴로워하던 용은 그 모든 것이 자신의 욕심 탓이라고 여겨,  선대의 만류에도 자신을 분리하고 선대에게 후계를 맡기고 여행을 계획했다.

- 그래도 이 아이는 네 후계이자, 그녀가 남긴 보물이란다. 어찌 보지 않고 살겠다는 것이냐.
- '그것'은 제 '욕심'입니다. 후계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제대로 인간의 형상도 가지지못한 어린 피조물에 가까운 후계를 버리고, 심연을 분리해 세상의 끝에 봉인하고 고귀는 '대업'을 짊어지고 세상을 떠돌았다. 인간이라는 존재를 해하는 것은 오직 인간이었다. 신념을 위해, 종교를 위해, 때로는 인간 위에 올라 앉은 인간의 욕심을 위해, 자신의 옮음을 증명하기 위해 인간은 인간을 해쳤다. 그 안타까운 열화의 전장에서 수 많은 죄 없는 생명은 타 올라 별이 되어갔다. 그것들을 하나 하나 구원하기에 대업의 무게는 무거웠다. 고귀는 점점 지쳐갔다. 아. 그렇다면 자신은 무엇을 막아야 한단 말인가.

그때 열화속에서 용은 별을 발견하게 된다.

화염을 맞고 심해에 가라앉아 사라질 작은 별.

공평해야할 고귀는 그 작은 일렁임에 마음이 흔들렸다. 
흔들린 마음에 운명이 먼저 움직여 생각지도 않게 심해에서 그 작은 별을 건져내게 되었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고귀는 조금 고민했지만, 
살아난 작은 생명이 발하는 빛에 더 이상 그 이유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아.
너를 만나 생명의 성장이 이렇게나 신비하고 아름다운 것을 알게 되었다.
무언가를 키워나가는 기쁨도 네가 모두 주는 선물이란다.

고귀는 인간을 수호하기 위해서라면 전쟁, 그 자체를 막아야 한다 판단하여 부패한 세상의 혁명을 준비하였고 성장한 소년은 기꺼이 고귀의 파트너이자, 후계자가 되어 늠름하게 자라났다. 

그리고 언제부터 일까.

점점 당황스러울정도로 사랑스럽게 자라는 소년에게 꺼진 불씨는 다시 싹을 틔운다.

분명 분리 되었다 생각했던 욕심은 어디서 묻어나는지 다시 고귀를 지배하려 들었고 용은 다짐했다.

이 아이만큼은 빼앗길수 없다.

대업을 위한 준비는 마무리 되었다. 소년은 청년이 되어 훌륭하게 성장했다. 조금 일찍 이들을 떠나도 괜찮을 것이다. 그렇게 판단한 용은 별도 모두 잠든 새벽 청년의 곁에서 몸을 숨겼다.

그리고 달의 보금자리에서 깊은 잠에 들게 된다.

사랑했던 별이 불러올 새로운 아침에,
비록 사랑했던 별은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겠지만,
그것으로 족하다고 여기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심연이 눈을 뜨게 된다.

***

"정말, 갑자기 사라지시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번엔 좀 길었잖아요! 길게 어디론가 갈 때는 말씀 좀 하시라고 그렇게 일렀건만....드래곤씨?"
"....그렇구나. 그는 그랬구나."
"...드래곤...씨?"
"아니, 아니다. 그래. 나는 드래곤이지."

심연이 고귀의 별에게 속삭인다.

"'나'는 '그'다. 너의 용이다."



Posted by 김스팸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