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후 혁명군은 아주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많은 일선에 드래곤이 직접 서는 시간이 많아졌고, 꼭 나갈때는 아무도 데려가지않거나 이반코프만을 동행하곤 했는데, 그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전투에서 승리해서 돌아오곤 했다. 물론 이럴거면 처음부터 직접 뛰어들지 그랬냐는 안좋은 시선도 있었지만 드래곤은 더욱 더 혁명군 사이에서 입지를 다지며 영웅이 되어갔다.

"자, 보자."
"아..."
"이런.....흉터가 남았구나."
"괜찮아요. 진짜. 어차피 이미 많고..."

사보의 조금 차갑고 부드러운 피부에 드래곤의 뜨거운 손이 닿아 홧홧했다. 사보가 긴장의 숨을 삼키자, 새하얀 목 울대가 울렁 움직였다.  잠시 상처를 쓸어내리던 드래곤의 손가락이 사보의 목 끝을 더듬어 내려갔다. 그렇게 흘러 내려오듯 내려온 손가락이 쇄골에서 잠시 멈추더니 다시 손을 펴 목을 감쌌다. 차가웠던 사보의 피부가 금방 미지근하게 변했다.

"몸이, 차구나. 아직 열도 있는것 같고."
"아..."
"칼에 독이 묻어 있었다지. 이야기는 들었단다."
"괜찮아요! 이, 이쯤은-"
"이곳이 바람이 심하니, 당분간은 내 천막에 있으렴."
"그렇지만...!!"
"네가 불편하면 비워주겠다."

다친 사람을, 이렇게 찬 곳에 두면 회복도 더딘 법이지. - 내친김에 사보를 바로 데려가려는 듯 드래곤이 그대로 모포에 사보를 감싸 안아 올리자 사보가 깜짝 놀라 드래곤의 목에 팔을 둘렀다.

"으악, 깜짝야!"
"하하, 놀라는 소리가 남자답구나."

그렇게 다시 드래곤의 막사로 이동하며 사보는 저를 안고 태연하게 걸어가는 드래곤을 보았다. 이제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드래곤은 아마도 달라졌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확실히 달라졌고, 이것은 드래곤이 홀연 자취를 감춘 이후에 일어난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달라진 드래곤이 변한 것이 문제인가?

그렇게 묻는다면 대답할 수 없었다. 적어도 전보다 혁명군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고, 그들을 위해서 자신을 기꺼이 희생했다. 비록 적에게 있어서는 가차 없어졌고, 더 과격해 졌으며, 전에 보이던 적에 대한 자비 없이 모조리 잡아죽이는 잔인함에 선득해지지만, 그 외에는 완벽한 리더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처음의 드래곤은 물론 공평한 리더였으나, 그 공평함이 적에게도 미치는 사람이었다. 자신에게 엄격한 만큼, 남에게도 엄격했고, 모든 이를 같은 잣대로 재는 사람이었다. 이 공평함에 끌리는 자도 있었지만 확실히 그것에 불만은 가지는 자도 적지 않았다.

"자. 앉거라."
"....드래곤씨."

마치 자신을 곧 깨질것 같은 유리 인형처럼 부드럽게 침대에 앉히는 드래곤을 사보는 다시 마주했다. 이것은 꼭 짚고 넘어가야했다.

"사라지셨을때,"
"...."
"무슨 일 있으셨던거에요?"
"...."
"부상이 있던건 알고 있었어요. 꽤...큰 것 같다고 추측도 하고 있었구요."
"...."
"솔직히 드래곤씨를 믿지만...이 믿음 안에 불신이 있어요."

사보가 자책하듯 제 가슴에 손을 얹자, 드래곤이 그 사보의 손 위에 제 손을 가만히 얹었다. 평소와 변함없이 조금 거칠지만 크고 따뜻한 손이다. 아까까지만 해도 제 목을 부드럽게, 마치 이 세상 가장 소중한 것을 쓰다듬는 것 처럼 쓰다듬던. 

그 손.
그 온기.

"확실히...그때의 일을 말하기는 힘들다만 달라진 것은 있단다."
"...."
"기억이 조각났고, 그로 인해 내가 많이 달라졌겠지."
"그게, 무, 무슨!?"
"크게 앓았고, 그 이후에 많은 것들을 잃었어. 나는 그것이 찾고싶단다."
"드래곤씨..."
"의심스러웠겠지. 그건 알고 있단다. 허나, 날 믿고 목숨을 걸었던 그 순간 처럼, 앞으로도 믿어주길 바란단다."
"...."
"그 전의 '나'와는 다른...부족한 면도 있을거라 생각하지만...그건 '널' 의지해도 괜찮겠니?"
"...."
"미안하구나. 허나, 이제 내가 의지할 곳은 '너' 뿐이란다. 사보."

아.
악마와 같은 뱀의 혀가 움직인다.

너무나 달콤한

'의지 할 곳은 너' 라는 그 말이.

"네...드래곤씨..."
"고맙구나."

심연이 고귀의 별을 품에 안는다.
고귀는 차마 아까워, 
만지지도 못했던 그 보물을.

보아라.

이제는 내 것이다.


***

심연의 달콤한 밀어는 아이를 타오르게 만들었다. 사보는 보다 적극적으로 드래곤을 보좌했고, 그간 고귀가 했었던 일들을 다시 한번 찬찬히 짚어주었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기억나지 않느냐 조심스레 물을 때는 조금 씁쓸하고 안타깝다는 듯 자조하며 미안하다 말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면 이쪽이 오히려 미안하다며 자신이 있으니 괜찮다는 기특한 말을 할 줄도 알았다.

그렇게 꽤 많은 밤을 함께 이야기 했다.

어떤 날은 자신의 어린 날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드래곤씨, 기억나요? 그날 말이에요. - 아. 이 사랑스러운 것을 옆에 두고 어찌 그 시간을 버텼을까. 아무리 이 작은 아이를 이용하겠다 덤볐어도, 결국 심연 또한 고귀와 같은 자 인지라 사보가 사랑스러운 것은 어쩔수 없었다. 이 사랑스러운 것이, 더 사랑받기 위해 기특한 이야기를 속삭이고, 끄덕인다. 조잘대는 모습이 사랑스럽고, 함께 하는 목욕시간에 언뜻 볼수 있는 잔근육 잡힌, 지금껏 옷가지로 꽁꽁싸매고 다녀 새하얀 몸도 아름답다. 어린 날의 비극이 할퀴고 갔다는 흉터들도 안타깝고 사랑스럽다. 웃음소리, 생각하는 모습, 우는 모습과, 품에 안겨 잠드는 그 순간까지.

한 순간도 사랑스럽지 않은 적이 없다.

이 어린 것을 그대로 품지 않은 것은 그 순간이 지나가는 것이 아깝도록 소중하기 때문이며,
모든 인간에게 공평해야할 '대업'을 업은 '용'으로써 그 형평성이 어긋나기 때문일 것이다.

허나 그것은 '의무'와 '권리'를 업은 '고귀'의 이야기다.

비록 자신도 그 일부라 일부의 힘을 가지고 있었고, 
어둠 속에서 절망을 파먹으며 자란 세월에 만든 힘도 있었지만,
고귀의 힘에는 비할 바가 되지 못했다.

허나, 그 말은 '고귀'가 할 수 없는 일을 '심연'은 할수 있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자면,

"-래서 드래곤씨....드래곤씨?"
"....말하려무나. 사보."
"...아, 어...왜 그렇게 빤히..보세요? 제 얼굴에 뭐, 묻었어요?"
"아니. 그렇지는 않지만. 보고싶기 때문이겠지."
"엣..."

이 아이를 사랑하는 일.


용은 한 번 반려를 잃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분리했다.
독점, 애욕, 온갖 사랑스러운 것들에 대한 마음을.
또 새로운 인간을 만났을 때,
욕심내지 않으려고.

그렇게 분리 된 것은 자신이고,
그러므로 자신은 사랑하기 위해 분리된 자다.

"왜 일까."
"...뭐가요?"
"보고 있어도 이리 보고 싶어지는 이유."

그러므로 

나는

"으어....드래곤씨 원래 이렇게 느끼한 사람이에요?"
"하하하."

널 사랑하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Posted by 김스팸팸
소년은 늘 보아온 이 남자가 지금 이순간, 제일 낮설었다.

"그러하면 내일 아침에 있을 전투를 막으려면 오늘 자정이나 새벽에 이곳으로 찾아가 습격하면 되는 일이 아닌가?"
"그러기엔 늦은 새벽은 이쪽도 시야를 확보하기 힘들다블."
"그런가?"
"그리고 아무래도 이쪽은 방어전이다블. 습격을 한다고 해도 인원을 확보하기가 힘들다블."
"부상병이 있는 것은 이쪽도 인정하지. 허나 아직 훈련 받고 있는 인원들도 있고, 가용인원은 충분하다고 본다만."
"?!!?!? 뭐, 뭐라고...하는 거냐블!? 그럼 지금 훈련생들을 이용하자는...."
"그렇다. 비록 훈련생들이라고 해도, 지휘관을 실력있는 자로-"
"지금 훈련생들이...나이가 몇인지는 알고 하는 소리냐블?"
"확인했다. 15-20초반의 남성들이더군. 비록 남성의 신체 능력이 가장 최적화 된 나이가 20대 중반이라지만, 충분히-"
"드래곤!"
"...그것이 힘든 일이었나?"
"....잠시 쉬죠! 응? 아까부터 우리 진도가 안 나가는데."

사보의 말에 모두들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이반코프가 날카로운 눈으로 드래곤을 바라보고 돌아갔지만 그 뿐이었다. 어느새 회의실에 둘만 남게 된 사보가 깊은 한숨을 쉬더니 드래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드래곤이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저, 드래곤씨...아까 그거 진심이었어요?"
"진심이었다만. 비록 새벽에 투입되는 인원들의 피해가 있더라도 이 요새 안의 남은 전투병들과 부상병들을 지킬수 있지."
"....드래곤씨. 훈련병 아이들은 저와 같은 나이대에요."
".....?"
"그리고 '루피'와도 같은 나이대의 아이들이고요."
"....루피?"
"또 그러신다. 드래곤씨의 아들이요."
"....."
"물론 드래곤씨가 지금 말 한 작전이 지금 가장 최선인건 알지만....어린 훈련병들을 희생할 만큼 아직은 절실한 것도 아니고..."
".....그렇군. '그것'이 아직 살아있었단 말인가. 의외군."
"네?"
"아니다. 혼잣말이지. 그렇군...."

사보는 점점 눈앞의 드래곤에게 위화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 전의 드래곤을 떠올렸다. 확실히 이번 작전은 그라면 절대로 고려조차 하지 않았을 생각이었다. 설사 누군가가 이야기 한다고 해도 고려조차 하지 않았겠지. 눈앞의 어릴때부터 봐 온, 이 세상에서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드래곤이 전혀 다른사람처럼 느껴졌다. 사실 그랬다. 드래곤은 돌아온 이후, 뭔가 조금 달라졌다. 당연히 알고있던 사실도 처음 접하는 듯 했고, 모든 것을 신기해했다. 물론 그런 모습도 얼마 안 가 사라졌지만 이 위화감은 어디서 스멀스멀 기어나오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 밖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회의실을 채웠다.

"어때, 아직도 생각은 변함없나블?"
"....확실히, 습격에 대한 생각은 변함이 없다만."
"...드래곤..."
"허나, 이것은 바뀌었다."

드래곤의 눈이 살기의 희열로 가득 차 올랐다.

"그것은, 내가 직접 하지."

***

그리고 별도 달도 잠이 든 자정에 드래곤은 홀연히 사라졌다. 그리고 그 정적의 그림자를 별을 닮은 소년과 죽음을 넘은 자가 밟았다.

"아, 아니, 너는 왜 따라오는거블?"
"그게...에...에이, 몰라요! 걱정되니까..."
"나는..됐다블, 네 몸이나 잘지키라블!"
"헤헤, 그래도 이반코프씨가 같이 있으니까 든든하네요!"
"....이 꼬마가 못하는 말이없다블."

깊은 잠을 자고 있는 아름드리 나무 뒤에서, 안식을 저버리고 눈을 뜬 부엉이처럼, 두쌍의 눈이 용을 쫒았다. 자정을 넘기고 새벽이 되어가는 하늘은 고요했고 안식이 머무는 땅은 조용했다.

"이, 이상하다블...들어간지 한참인데..."
"뭐, 뭐가 잘못 되었나...!?"
"설마..그래도 드래곤은..."
"....가봐야겠어요!!"
"뭐, 뭐라블?! 아, 사보! 저기, 사보!!"

별이 민첩하고 빠르게 대지에 안착해 그 가벼운 발걸음에 박차를 가한다. 어휴, 내 이럴줄 알았다블!! - 그렇게 생각치도 않게 적의 요새에 들어온 두 사람은

[우득-]

살육의 현장을 보게 된다.



아무소리도 나지 '않은' 것이 아니었어.
아무소리도 '내지 못한' 것이다.



"이....이런....제기랄...!!"

절망에 눈이 먼 병사 하나가 사보의 목덜미는 낚아채 품안에 가두어 그 목에 비수를 가져다 대었다. 우득- 살육에 박차를 가하던 드래곤의 손이 일순 멈췄다.

"이...개새끼야!! 이....이 씨발...."
"....내려놓아라."
"....."
"그렇다면 적어도 고통은 없이 보내주마."
"이 거지 같은 자식이!!!!"

비수가 목으로 파고드는 선연한 감각이 사보의 이성을 지배하는듯 하다. 

도망가고 싶어. 
죽고싶지 않아.
살고 싶어.

창백하게 흐려지는 눈을보며 드래곤이 물었다.

"사보."
"네..네!?"  
"씨발 것들아, 대화하지마!! 죽여버릴거야!!!!"
"나를, 믿는가?"

나를. 아, 지금 이순간 이 질문이 얼마나 어려운 질문이란 말인가. 
당신을 믿기 힘들어 온 나에게, 자신을 믿느냐고 묻는 당신.

당신은 어렵다.
파고들고 파고들어 알아가도 더 헤매이는 미로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나는 당신을 믿었다.

"그렇다면 눈을 감거라."



그리고 눈을 감았다. 
무엇이 지나갔는지 모를 순간이 지나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느껴지는 것은
눈앞으로 펼쳐진 살육의 끝과 당신의 너른, 그리고 따뜻한 품이었다.

"착한 아이구나."

당신의 미소가 새벽에 번졌다.

***

"....넌 누구냐블?"

사보의 상처를 치료해 침대에 눕히고 천막을 나온 드래곤을 바라보며 이반코프가 물었다. 강한 자인지는 알았다. 허나, 오늘 이 눈으로 바라본 힘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이반코프의 날카로운 눈에 비친 남자는 잠시 대답을 머뭇거리더니 눈을 맞춰왔다. 이반코프는 드래곤의 눈이 좋았다. 그 우직함과 건재함, 그리고 그 안에 느껴지는 생명을 향한 자비가 좋았다. 그것을 느낄수 있는 것을 감사했다. 하지만 지금 저와 맞춘 눈은 굳이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광기.

"확실히 네가 아는 '드래곤'은 아니지."
"...."
"허나 '인간이 아닌 것'에 영혼을 팔아 힘을 얻은 네가 나를 힐난 할 위치는 아닌 것 같군."
"...."
"나는, 용이다. 고귀의 이면이자, 심연이지."
"...."
"나는 나의 것을 잃은자고, 그것을 찾으러 왔다."
"....."
"이런 나를 막을텐가? 그럴리가."

드래곤이 웃었다. 잔인한 미소에 소름이 돋았다.

"너는 그럴수 없어. 왜냐면 넌 잔인할정도로 공평한 고귀했던 그를 동경하고 미워하고 사랑하고 원망했기 때문이지."
"....."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는다. 나에게는 '대업'의 짐이 없지. 나에게 있는 것이라곤, 너희들 뿐이다."
"....."
"나는 갈구하는 자. 가진 것은 절대 놓지 않고 끝까지 지킬 것이다."
"...."
"그러니 너는 나를 저 버릴수 없어."

사실은,
좀 더,
공평이 아닌,

우리를 먼저 생각해주길 바랬어. 드래곤.

"나에게 너희가 절박하듯, 너희에게도 내가 절박하기 때문이지."

심연이 미소짓는다.

"안 그런가? 이반코프."






Posted by 김스팸팸


'첫 인간'을 만나 용은 인간과 대업 사이에서 처음으로 흔들렸고, 처음으로 대업을 잊었다. 처음으로 느끼는 사랑의 환희에 용의 시간은 신기루처럼 사라져갔다. 인간의 수명이란 용에게는 찰나와 같으니 이 달콤한 순간은 마치 흐르는 물처럼 사라질 것을 알아, 용은 그 시간을 소중히 하기로 다짐한다. 

허나 그 모든 것이 지나치면 독이 되는 것.

생각치도 않게 둘 사이에 생긴 후계는 독이 되어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어미를 죽이고 태어났다.

태어난 것에게도, 이미 잃은 것에게도 죄를 물을 수 없어 괴로워하던 용은 그 모든 것이 자신의 욕심 탓이라고 여겨,  선대의 만류에도 자신을 분리하고 선대에게 후계를 맡기고 여행을 계획했다.

- 그래도 이 아이는 네 후계이자, 그녀가 남긴 보물이란다. 어찌 보지 않고 살겠다는 것이냐.
- '그것'은 제 '욕심'입니다. 후계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제대로 인간의 형상도 가지지못한 어린 피조물에 가까운 후계를 버리고, 심연을 분리해 세상의 끝에 봉인하고 고귀는 '대업'을 짊어지고 세상을 떠돌았다. 인간이라는 존재를 해하는 것은 오직 인간이었다. 신념을 위해, 종교를 위해, 때로는 인간 위에 올라 앉은 인간의 욕심을 위해, 자신의 옮음을 증명하기 위해 인간은 인간을 해쳤다. 그 안타까운 열화의 전장에서 수 많은 죄 없는 생명은 타 올라 별이 되어갔다. 그것들을 하나 하나 구원하기에 대업의 무게는 무거웠다. 고귀는 점점 지쳐갔다. 아. 그렇다면 자신은 무엇을 막아야 한단 말인가.

그때 열화속에서 용은 별을 발견하게 된다.

화염을 맞고 심해에 가라앉아 사라질 작은 별.

공평해야할 고귀는 그 작은 일렁임에 마음이 흔들렸다. 
흔들린 마음에 운명이 먼저 움직여 생각지도 않게 심해에서 그 작은 별을 건져내게 되었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고귀는 조금 고민했지만, 
살아난 작은 생명이 발하는 빛에 더 이상 그 이유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아.
너를 만나 생명의 성장이 이렇게나 신비하고 아름다운 것을 알게 되었다.
무언가를 키워나가는 기쁨도 네가 모두 주는 선물이란다.

고귀는 인간을 수호하기 위해서라면 전쟁, 그 자체를 막아야 한다 판단하여 부패한 세상의 혁명을 준비하였고 성장한 소년은 기꺼이 고귀의 파트너이자, 후계자가 되어 늠름하게 자라났다. 

그리고 언제부터 일까.

점점 당황스러울정도로 사랑스럽게 자라는 소년에게 꺼진 불씨는 다시 싹을 틔운다.

분명 분리 되었다 생각했던 욕심은 어디서 묻어나는지 다시 고귀를 지배하려 들었고 용은 다짐했다.

이 아이만큼은 빼앗길수 없다.

대업을 위한 준비는 마무리 되었다. 소년은 청년이 되어 훌륭하게 성장했다. 조금 일찍 이들을 떠나도 괜찮을 것이다. 그렇게 판단한 용은 별도 모두 잠든 새벽 청년의 곁에서 몸을 숨겼다.

그리고 달의 보금자리에서 깊은 잠에 들게 된다.

사랑했던 별이 불러올 새로운 아침에,
비록 사랑했던 별은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겠지만,
그것으로 족하다고 여기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심연이 눈을 뜨게 된다.

***

"정말, 갑자기 사라지시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번엔 좀 길었잖아요! 길게 어디론가 갈 때는 말씀 좀 하시라고 그렇게 일렀건만....드래곤씨?"
"....그렇구나. 그는 그랬구나."
"...드래곤...씨?"
"아니, 아니다. 그래. 나는 드래곤이지."

심연이 고귀의 별에게 속삭인다.

"'나'는 '그'다. 너의 용이다."



Posted by 김스팸팸

고귀가 눈을 감을 때, 심연은 눈을 뜬다.


이것은 마치 등 뒤의 그림자, 동전의 양면, 뜨는 해와 지는 달처럼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고귀는 영광스러운 존재이지만, 그런 그에게도 휴식은 필요했으므로 고귀가 휴식을 위해 눈을 감는 사이 심연은 눈을 떠 움직일 수 있었다.

허나, 눈을 뜨고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전부였다.

심연이 가두어진 세상의 끝은 많은 용사들이 찾아왔다. 누군가 세상의 끝에 진리가 묻혀있다 소문을 냈기 때문이다. 심연은 가두어진 상태에서 자신을 찾아오는 많은 도전자들을 상대해야했다. 개중에는 고귀가 자신을 버리고 간 것을 아는 자도 있었고, 그가 그저 금은보화인줄 아는 자도 있었고, 이세상의 진리를 찾아 온 학자도 있었다. 그리고 심연은 그들을 공평하게 대했다.

죽음으로써. 

그리고 그들이 이곳에 오기까지 함께 했던 것들을 구경했다. 걸치고 들고, 읽으며 온 많은 세상의 물건들. 그리고 심연은 그것들을 가지고 언젠가 제가 이 곳을 나가 세상에 날개를 펼칠때를 기대하며 다시 잠이 들었다.

그렇게 지낸 수많은 낮과 밤.

다시 눈을 떴을 때, 심연은 제 안에 일렁이는 불꽃을 찾아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자신이 아직 '고귀'와 함께 있을때 느꼈던 그 감각. 등에 업은 '대업'까지도 아무래도 상관 없어지던 그 감각. 사랑스러운 것을 찾아낸 환희에 어린 그 감각이 다시 살아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심연은 그것이 아직 작은 것을 알았다. 그리고 지금 자신이 깨어 있는 것은, 고귀가 그 사랑스러운 것을 피해 달아나 자신을 잠시 봉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복수의 여신이 있다면, 지금 심연의 등을 떠 미는 것은 아마도 그녀 일 것이다.

그리고 심연은 깨어나 준비를 했다.
지금껏 초라한 이 세상의 끝에서 언젠가 이곳을 떠나 드넓은 그곳으로 다시 나갈 그 꿈을 이룰.

봉인은 시간이 지나 그 힘을 다하여 쇠약해졌으니, 이제 그 이전보다 강해진 희망의 불꽃이 살아 있는 심연을 이길수 없었으니.

아.
이제야 말로 자유의 날개를 펼치리라.



세상의 끝에서 심연은 발걸음을 뗐다.

***

어찌보면 인간에 의해 비참한 나날을 보내야 했던 심연이지만, 그것과 별개로 심연도 인간을 사랑했다. 정확히 심연은 인간이 재미있었다. 눈 앞의 존재의 거대함을 알지 못하고 도전하는 자들. 그 불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것을 이 손으로 꺼뜨릴 때의 감각은 또 얼마나 황홀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또 도전하는 생물. 세상의 모든 생물은 용을 경배한다. 허나, 그러지 않고 도전하고, 경배하고, 저와 같은 선상의 존재라 여기는 것은 인간이 유일하다. 그것이 흥미롭다. 심연은 세상의 끝에서 나와 불꽃을 주인을 찾기 위해 여행하며 흥미로운 많은 인간들에게 고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럴 수 밖에. 고귀와 심연은 결국은 같은 존재라, 그 형상도 같다. 그러니 사람들은 그가 당연히 고귀일 것이라 여겨 말을 걸었다.

-어찌 여기에 계시나요.
-갑자기 행방불명 되셔서 '그'가 걱정이 많습니다.
-뭐, 저희와 다른 존재이시니, 생각도 다를 것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만.

인간들은 너무나도 쉽게 고귀가 사랑스럽기 그지없어 차마 그 눈에 담지 못하고 숨긴 보물은 심연에게 내어주었다. 그 불꽃을 향해 찾아 떠난 적지 않은 낮과 밤이 지나고, 산속 깊은 곳에 다다랐을 때, 심연은 고귀가 숨겨 놓은 그 작은 불꽃을 찾을 수 있었다.

"아! 드래곤씨! 진짜 도대체 지금까지 어디 있었던 거에요!!!"

하늘의 별을 따다 금으로 녹여 자아낸 듯한 반짝이는 금발. 곧은 의지의 눈빛이 자신을 보자 일렁인다.

아, 이것이었구나.

하늘을 지배하는 존재의 앞에서 빛나는 것.

심연은 기회를 얻었다.


Posted by 김스팸팸

이것은, 한 고귀한 존재의 이야기다.


이 세상에 태어난 '그'는 인간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곧 서툴던 그의 실수로, 사랑하는 것을 잃어야 했다.

아무리 고귀한 것이라 하지만, 성장하는 존재에게 실수는 당연한 법.

허나,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던 것을 잃은 고귀한 존재는 
다시 찾아올 사랑스러운 것들이 두려워졌다.

자신이 상처 입힐 사랑스러운 것들에 대한 미래가 두려웠고,
그 두려움이 고독을 선택하게 만들고,
그 고독의 끝에 용은 자신을 분리하기에 이르렀다.

아.
사랑스러운 가능성을 가지고 태어나는 연약한 존재들이어.

나의 사념이, 
그들을 상하게 할까 두렵다.

그리하여 심연을 분리하여 세상의 끝에 홀로 버렸나니,
심연은 그 어둠속에서 원망을 양식 삼아 자라,
고귀이자 자신인 것을 삼켜, 원하는 것을 이루리라.

그렇게 암흑 속에서 기회를 기다렸다.



그리하여 드디어,
고귀한 것의 마음에 다시 사랑의 불꽃이 일었나니.

이 작은 불씨가 걷잡을수 없이 커질까 두려워,
고귀는 사랑스러운 것의 옆자리를 비우고 잠이 들었다.

그 시간의 틈새에서 심연이 눈을 떴나니,

'나'는 '너'이자, '너'는 '나'이다.

'너'에게 사랑스러운 것이 
'나'에게 어찌 사랑스럽지 않을 쏘냐.

허나 복수의 독에 눈이 먼 심연은
그 사랑스러운 것을 꾀어내여,

'고귀'의 손에서 빼앗아,
다시 '심연'을 가르쳐,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려했다.



그리하여, 나는 너를 사랑했다.
나의 사랑은 태어난 그 순간부터 더럽혀졌나니.

***

" '나'는 '그'이자, '그'가 아니다."
"...."
" '나'는 '너'를 속였다."
"...."
"그러니, 돌아가거라. 사랑스러운 아이야."

그가 자신이 짊어지던
모든 고해를 나에게 쏟아놓자,

'그'는 진실로 '고귀'가 되었다.

"당신이 '그'라면."
"...."
"나를 사랑하던 '그'라면."
"...."
"그리고 당신의 사랑이 그 어떤 싹을 틔우든 진실이라면,"
"......"
"나의 사랑도 진실이 아닌가요, 드래곤씨."
"...."
"그러니, 저는 이 사랑을 멈추지 않을거에요."

사랑스러운 것의 입술이 심연의 입술에 나비처럼 내려앉았다.

당신은 '그' 사람이니까.
아니라고 말하지만 결국엔 '그' 사람이니까.
이 사랑의 꽃은 꽃망울을 터뜨릴 자격이 있는 사랑이다.
아니, 사랑의 꽃망울에 그 누가 자격을 논한단 말인가.

그러니 이 마음은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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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컨셉으로 시작되는 이야기입니다.

썰 형식으로 풀어갈지, 그래도 용별처럼 짧아도 이야기로 풀어갈지는 에....잘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의 문구는 기도문 중 하나입니당! ㅇ3ㅇ)~

Posted by 김스팸팸

영광스러운 날에, 영광을 업고 용은 태어났다.


지극히 고귀한 존재.
인간을 위해, 자비를 베풀며 살아갈지니.
아침의 해가 하늘을 지키다 하늘 너머로 사라지도록,
자정의 달이 하늘의 안식을 수호하다 다시 사그라들도록.

바람이 불고, 곡식이 여물고, 세상의 모든 이치가 들어맞아,
그곳을 살아가는 것들에게 널리 이로울 수 있도록.

그가 짊어진 대업은 무겁고 먼것이었지만,
고귀한 존재에게서 영광스러운 날에 태어난 용은 그 대업을 묵묵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고귀한 존재가 세상의 반을 채운 '인간'을 이해하기에는 실로 어려운 법.
인간과 섞여 살아가 인간을 이롭게 하며 '용'이 아닌 '인간'의 시선을 가르치고,
그럼에도 '용'의 대업을 지켜줄 존재가 필요했다.

무지하지만 성장하는 생물.
끊임없는 가능성을 품고 태어나,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인간은 자라난다.
그런 매력적인 생물이, 고귀한 존재에게 어찌 사랑스럽게 보이지 않을까.

용은 자신을 성장시켜 줄 '첫 인간'을 골라 사랑에 빠졌다.

사랑에 빠지니 마치 인간처럼 그 존재를 갈구하게 되고,
정신을 차렸을 땐 미숙한 상태에서 미숙한 후계를 그녀에게 짊어지게 만들게 해,
반려와도 같은 '첫 인간'을 인과의 굴레에 다시 보내야 했나니.

그를 창조한 선대는 그것 또한 세계의 이치니,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지만.

자신의 욕심으로 피어오르는 그녀를 꺾어 져버리게 만들었으니,
이 모든 것은 자신 안에 있는 야망, 욕망, 질투 등의 온갖  사념들 탓이라 여겨,

자신을 분리하게 이른다.

그리하여 용은

자신 안의 심연을 이 세상 끝, 아무도 오지 않을 곳에 봉인하게 된다.
심연은 이 또한 너이자 나라며 그를 힐난하고 원망하였지만,
인간을 돌봐야 할 고귀한 존재에게는 필요없는 것이라 단정하고 그를 외면했다.



하지만 운명이란 것은 고귀한 존재라 할 지라도 벗어날 수 없는 것.
그에게 다시 사랑스러운 가능성이 나타났으니,
그의 마음 안에 다시 불꽃이 일었다.



아, 고귀한 존재여.

그 시선이 머무는 그곳에
심연도 머무나니.

그 마음의 불꽃에
심연이 눈을 떴다.



Posted by 김스팸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