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피스/사보른2015. 9. 14. 17:21

흐윽,흑, 으읍, 으, 크흑- 온통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막사에서는 자리의 모든 자들을 안타깝게 만드는 신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아니, 새어 나왔다고 해야 옳았다.


 치이익- 전쟁터에 소독제가 있을리 만무하니 뜨겁게 달궈진 수술용 쇠집게가 사보의 몸을 파고들며 기이한 소리와 냄새를 냈다. 출혈량 때문에 마취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그 소용돌이 속에서, 가장 괴로운 자를 품은 드래곤의 낮은 목소리가 또록, 데굴 해루석 탄환이 소리와 함께 사보의 귀를 아득하게 울렸다.

 괜찮다. 나의 아가. 이 또한 지나가리니. 너는 무사 할 것이다. 무사 해야한다. 무사 해야한다. 으득, 온 몸을 휘젓는 쇠집게가 몸을 파고 들수록, 드래곤의 어깨를 함께 파고들어가는 사보의 날카로운 이빨에도 피 비린내가 섞였다. 찮단다, 아가야. 곧 지나갈거란다. 너는 무사할거란다. 마치 무언가의 기도처럼,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인지 피인지 모를 것을 거슬러 닦아 올리며, 세상에서 가장 믿음직스럽고 따스한 소리가 아득한 고통 속에서도 속삭인다.


 투루륵, 투둑.


마지막 탄환이다. 수고했다. 잘 참았어. - 남자의 낮은 목소리에 결국 참았던 눈물이 터져흘렀다.


우욱, 우후후으으으으윽, 흐윽, 흑 - 사랑스러운 상처입은 짐승의 하울링같은 울음소리에 눈을 감았다.


아, 이 끔찍한 밤이 사라지질 않는다.


***


아무리 끔찍해도 밤은 지나고 새벽은 찾아온다. 하지만 새벽이라 하여 희망이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깨끗한 거즈가 수십장 들여지고 그 수만큼 피와 진물에 더러워진 거즈가 버려졌다. 그 차가운 새벽에 사보는 눈 뜰줄 몰랐고 그 옆에 앉은 드래곤은 눈 감을 줄 몰랐다. 


그런 까마득한 새벽을 몇번이나 넘었는지 아득해질 무렵 무겁게 감겨있던 눈이 열렸다. 그리고 갈라진 작은 목소리가 온 신경을 곤두 세우고 자신을 바라보는 드래곤에게 속삭였다.


드래곤 씨,

나는

저는

당신 곁에

여기에

존재하는 것이,

맞나요?


그래.

너는

여전히

아직도

나의 곁에 있단다.


다시 돌아와 주어,

내곁으로 돌아와 주어

감사한단다.


그 날 두 사람은 처음으로 신의 이름을 불렀다.


***


 상처가 아물기까지는 이제 많은 것이 필요치 않았다. 시간과 그 시간을 이겨낼 인내, 그저 그뿐이었음에도 그것이 부던이도 힘들었다. 울퉁 불퉁한 상처는 아물어 새살이 돋아가지만 사보의 머릿속을 후벼파낸 기억의 상처는 아직도 피흘리는듯 온갖 비명을 자아냈다. 그렇게 낮과 밤을 함께 이겨내준 드래곤의 손이라도 사보는 제 등에 무언가 닿는 감각을 못이겨 몸을 떨었다. 마음의 상처는 달콤한 위로에도 그 서늘함을 지우지 못하고 점점 사보를 위축시켜갔다.

 드래곤은 때로는 냉정하게 때로는 인내하며 어떤날은 어르고 달래고, 어떤날은 조금 냉정하게 굴며 사보를 돌보았다. 시시각각 변하는 상태때문에 붕대질엔 달인이 되어 갔으며 외상후 스트레스로 내지르는 비명을 막던 손은 마치 짐승에게 물려 너덜너덜 해지듯 생채기가 늘었다.


 또 다시 괴로운 낮과 밤이 지나고, 겨우겨우 사보가 혼자 옷을 갈아입고 따뜻한 물에 몸을 담글수 있게 되었을 때, 드래곤의 손을 넘어 팔뚝으로 뻗은 생채기들도 멈추었다. 그리고 어깨부터 늘어진 그 짐승들의 자국을 확인하게 되었을 때, 사보의 마음은 참담함으로 물들었다.


당신의 곁으로 돌아오기 위하여 부린 몸부림이 당신을 다치게 하고 있었어요. - 기죽은 작은 짐승의 울음소리에 드래곤은 그저 그커다란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을 뿐이었다.


괜찮다.

이렇게,

돌아와 주었으니까.


그래, 그것으로 족했다.


***


 하지만 어린 짐승은 그것이 아니었던 듯 했다. 마치 다친 짐승이 상처를 핥듯, 드래곤의 무릎에 앉은 사보는 잠시 그 품에 기대에 지난 날 제가 만든 상처들을 돌아보았다. 짙고 괴이한 색이 되어버린 그것들은 제 얼굴에 남은 흉측한 것들과 같이 오래도록 그에게 남아있을 것 같았고, 그런 사실이 그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미안해요.당신을...상처입혔어. - 낮게 말하는 아이에게 괜찮다며 웃으며 달래려는 순간 드래곤은 움직임을 멈췄다.

 다친 짐승이 그 상처를 핥는 것 처럼 새하얀 그 얼굴과는 전혀 다른 외설적으로 붉은 혀가 괴이한 빛깔의 잇자국을 쓰다듬었다. 이미 피부에 닿는 그 혀보다 더 뜨거운 물에 몸을 담고 있을진대 온 몸의 신경이 그 혀가 닿는 피부에 쏠려 멈춘 듯, 뜨거웠다. 마치 인두와도 같았다. 그대로 혀가 지나치는 모든 곳이 뜨겁게 지져지는 기분이 들었다.드래곤이 움직임을 멈추자 그의 몸을 스치는 혀가 좀 더 대담하게 움직였다. 늘상 아이라고 생각했던 작았던 손은 이제 마디가 단단해진 어엿한 사내의 손이 되어 드래곤의 몸을 더듬었다. 그런 감각이 기이할 정도로 생경하여 얼굴이 홧홧하게 타오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결국 참지 못한 드래곤이 사보를 품에서 떼어 자리를 뜨려 하자 사보의 손이 드래곤을 붙잡았다.


가지마요.

거부하지 마요.


나를.


***


그리고는 다시 너는 나를 폭풍으로 밀어 넣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얽힌 몸과 섥힌 혀가 떨어질 줄을 몰랐다. 새살이 돋은 여린 피부에 거친 돌바닥은 차갑고 따가웠으나 그것보다 더 뜨겁고 강렬한 연인의 입술이 온몸을 타고 흐르는 감각이야 말로 선연하기 그지없다. 그래, 우리는 얽혀야 숨을 쉬는 연리지나 다름이 없다. 이미 인생의 반, 몸의 반, 삶의 반, 생의 반이 얽히고 섥혀 서로가 없이는 숨을 쉴수 없다. 그러니 확인해야한다. 이 입술이 닿는 피부, 그 아래에 뛰는 심장을, 파고드는 밀부 그 내부의 뜨거운 체온을. 섥히는 혀 사이에 터지는 달콤한 숨을 삼켜야 하고 서로 나누는 달콤한 신음에 취해야 한다. 


그러니, 제발.

나를 두고 가지마라. 


처음으로 절실한 그의 목소리가 온 몸을 물들였다.


네.

다시는.

절대로.


드래곤의 허리에 새하얀 다리가 감긴다.




아.

오늘도 몸이 섞이는 이 감각은 살아있으니,


우린 무사한 것이리라.


뜨겁게 파고드는 성난 용은 멈출줄 몰랐고, 공중에 붕 든듯, 다리는 허공에서 춤을 추었다. 몸을 지탱하는 것은 오직 연인의 단단한 팔이었고, 몸이 기댈 곳은 연인의 너른 품이었다. 흐읏, 힉, 흐윽, 힉- 급한 숨을 몰아 쉰다. 제가 만든 살아 돌아오기 위해 그에게 수놓은 기이한 그 자욱, 그 위로 삶의 숨이 터진다.


그리고 그 몸 안으로 그의 일부가 폭팔해 온 몸을 적셔온다.


아.

이 감각이 이리도 온전하니.


우리는 필시


아직 서로의 곁에 존재하는 것이리라.


그제야 안도의 웃음이 터졌다.


그리고 그날 밤은 서로 머리를 맞대고 달게 잠들었다.

Posted by 김스팸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