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피스/사보른2015. 11. 30. 00:11

"...."

"아."

드래곤은 제 침실에 앉아 있는 소년을 잠시 바라보다 이마를 짚었다. 결국 자신의 사별한 부인이 낳은 아들인 루피는 후계구도에서 밀려난 듯 했다. 그러니 이제 '족장'으로써의 책임을 다하라는 것이겠지.

"이름은?"

"사, 사보 입니다."

늑대들의 진지 한복판에 '진상'된 황금여우족의 오메가였다.


이름은 사보, 나이는 열 살. 성은 없었다.


***


"잘 생각하셔야 합니다, 드래곤님! 후계는 그 누구보다 강인하고 일족을 위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해적이라니요! 천출인 어미의 출생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 일입니다."

"그뿐이겠습니까! 붉은 여우 샹크스를 따라다녔다지요! 그것도 일족의 일로 '족장'인 아비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말입니다."

"이래서야..."

한없이 다음 대의 족장이 될 몽키 D가문의 장자에 대해 입방아 찧어대던 이들이 입을 다물었다. 드래곤은 거사로 인해 진지를 약 10년간 떠나있었고 그때 두고 왔던, 이제 막 태어난 갓난 아이였던 그의 아들은 붉은 여우를 따라 해적의 길을 걷겠다며 장로들과 입씨름을 가문의 장자 자리를 내놓았다. 드래곤의 반려는 아이를 낳다 죽었으므로 드래곤은 상처한 지도 오래라 반려의 자리도 비어있었다. 그리하여 거사의 진행 도중, 일을 선대인 가프에게 맡기고 마을로 돌아와야 했다. 그리고 열린 촌장 회의에서 이 사단이 난 것이었다.

"자자, 조용, 조용!"

결국 후샤마을의 촌장, 우프슬랩이 나섰다. 우프슬랩이 다스리는 후샤마을은 일족의 마을 중에서도 가장 인구도 많고 그 면적도 넓었으므로 드래곤이나 가프가 자리를 비우면 더러 그대리를 맡기도 한 노익장이었다.  우프슬랩의 공은 대대로 일족을 다스려 온 몽키 가문의 것과 견주어도 손색 없었으므로 촌장들 중에서도 드물게 공경을 받아오는 자였다. 우프슬랩이 입을 열자 소란스럽던 장내가 조용해졌다. 불만이 한 가득인 장로들의 얼굴을 찬찬히 보다 우프슬랩이 호통을 쳤다.

"어린아이가 치기어린 실수를 하였다하여, 어른 된 자로써 아이의 실수를 덮어주지는 못할 망정 춘삼월에 굶은 늑대들마냥 어찌 물어 뜯는가! 그렇게 따지면 젊은 시절 오랫동안 마을을 떠나있던, 그리고 지금도 거사를 위해 떠나있는 이 드래곤도 족장으로 부족한 자라는 말이 아닌가! 생각해보게! 한 일족의 수장이 될 자는 모름지기 시야가 넓어야 하는 법. 우리 일족의 땅이 좁지 않다고는 하나, 이 넓은 세상에 비할 바가 아닐진데,장자가 넓을 세상을 보러 잠시 둥지를 비웠다 해서, 그것을 가지고 이리 물어 뜯어 되겠냐 이 말이야!"

우프 슬랩의 말에 모두들 입을 다물었다. 물론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선대였던 가프도, 현대인 드래곤도 젊은 시절 마을 떠나 잠시 긴 모험을 떠난 적이 있었고 그로 인해 더 현명 해 져 지금의 수장자리에 앉아 일을 훌륭히 해내고 있었다. 같은 핏줄을 물려 받은 루피였다. 우프 슬랩의 말에 다른 촌장들이 눈치만 보시 시작하자, 이 일의 주모자나 다름없던 촌장, 히그마가 다시 입을 열었다.

"허나 그것은 다른 후계도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거늘, 드래곤님에게는 다른 후계가 없질 않소!"

"그렇소! 드래곤님은 그러니 다음 후계를 위해 잠시 마을에 머물러야 하오!"

"마침 코르보 산 너머에 있던 황금여우 일족을 소탕하고 남은 진상품 중에 최상급의 우성 오메가가 있소. 그를 반려로 삼아 다른 후계를 본다면 이 일이 해결되지 않겠소? 그간 자리를 배워 해이 해 진 마을의 기강도 잡는 것이 옳을 줄로 아오."

의외의 제안에 모두들 히그마를 바라보았다. 물론 최근 황금여우 일족을 소탕한 것은 히그마였고 그 진상품들 역시 모두 히그마의 소유였다. 황금여우 일족, 그것도 오메가의 경우 강한 야생성과 명석한 두뇌, 강인한 육체의 자식을 낳는 것으로 대대로 유명했다. 이로 인해, 이 세계에서 가장 영토가 드넓고 힘이 강하다는 천룡족에 대대로 오메가들을 바쳐오며  그 힘을 등에 업고 있던 이 일족은, 최근 줄어든 오메가의 수, 진상 되어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아이를 낳다 죽어버리는 오메가의 수가 많아져 그 기세를 잃고 천룡족에게 버려지다 시피한 일족이었다. 그 일족의 땅 중 남쪽의 땅 대부분을 히그마가 흡수했고, 그 재산과 노예들 역시 히그마의 것으로 돌아갔다.

"어차피 노예나 나름없는 신분이니, 모계 쪽의 잡음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황금여우족의 우성 오메가이니, 우성 알파인 족장님 사이에서 다른 후계를 낳는다면, 아니 그 아이가 후계가 아니라고 해도 일족에 도움되는 자식을 생산할 것이 분명하오. 비록 나의 소유이나 우리 일족의 번영을 위해, 그리고 족장을 위해서라면 노예하나가 아깝겠소!"

히그마의 말에 점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난감하게 드래곤을 바라보는 우프 슬랩과 자신만만한 눈으로 드래곤을 바라보는 히그마. 그것을 끝으로 장로 회의는 끝이 났다.


***


"자식 간수를 잘 하지 못해 촌장님께 큰 빚을 졌습니다."

"아닐세. 자네가 무슨 자식 간수에, 자식 교육이겠나. 그 아이를 맡아 키운 것은 나일세...나야말로..."

"아닙니다."

"허허, 이사람아, 괜찮대도. 허나 걱정일세. 가프도 그렇고 자네도 그렇고, 결국 마을로 돌아온 이유는...남긴 것이 있어서가 아니었나. 허나 루피는..."

젊은 가프에게는 어린 드래곤이 있었다. 젊은 드래곤에게는 입에 그 이름을 담아도 아까운 연인이 있었다. 하지만 루피는. 루피는 이 마을에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었다. 홀가분한 몸이었다. 그러니 돌아오지 않을 것이 당연했다. 드래곤은 루피를 데려간 샹크스가 자신에게 보냈던 서신을 떠올렸다.

"...아마 돌아오지 않을 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그러면-"

"허나, 지켜볼 생각입니다. 그것이 부모니까요."

"...그런가. 그래, 자네는 어쩔텐가?"

"....."

"난 사람은 영웅으로 만들기는 쉽고 악인으로 만들기는 어려우나, 든 사람은 영웅으로 만들기는 어렵고 악인으로 만들기는 쉬운 법이야."

나때문에 한 동안 덫에 걸렸으니, 내 죄가 실로 깊네. - 우프슬랩이 애석한 목소리로 말을 마치자 드래곤이 씁쓸히 웃었다. 

"아직 정해진 것은 없으니, 영리하게 잘 피해가겠습니다."


***


그리 하였는데.

"여기서 저를 내치셔도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처첩이란 이름의 씨받이가 될 것이 분명한 운명입니다. 부디 안위를 생각하시지요."

어린아이 답지 않은 언사에 드래곤이 가만히 소년을 바라보았다. 한쪽 눈에 끔찍한 흉터가 있는 아이는 바짝 매말라 있었으나, 노랗게 빛나는 달빛을 닮은 머리카락과선명하게 빛나는 눈동자는 예삿 아이가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것이 황금 여우족인가. 어찌나 야생성이 강한지, 아이의 귀는 여우처럼 둥그런 머리에 바짝 솟아있었다. 아직 인간으로 분하는 것이 서툴고 야생성이 강해 생기는 일이었다. 소년은 얇은 침의를 걸친 것 뿐이었으므로, 추위에 떨고 있었고, 눈앞의 진미를 보고도 손대지 않았으나, 자꾸 그의 뱃속에서는 제 허기를 채우라며 성화였다.

"단 과자도 있고, 과일도 있고...고기도 있는데 전혀 먹질 않았구나."

"....그게....족장님께서 오시기 전 까지는..."

"그래. 내가 왔으니, 먼저 식사부터 하자꾸나. 괜찮겠지?"

"....네!"

아이는 조금 눈치를 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꼬물꼬물한 작은 손이 급한 허기에도 식사예절을 지키는 것을 보며 드래곤은 아이를 찬찬히 바라보다 물었다.

"어찌하다 예까지 왔느냐. 그 눈은."

"....마을의 아비를 거역하고....도망치다 잡혀 이리 되었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천룡족의 씨받이가 되라 하기에..."

"...그것이 몇살때더냐."

"여섯살 때입니다. 마을로 돌아와 죽도록 맞고, 몸을 회복하며 다른 혼사처를 알아보다 마을이 습격을 받았습니다."

"....그렇구나. 왜 도망쳤느냐?"

"....그것은..."

머뭇거리다 소년이 드래곤을 올려다 보았다. 총기 어린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별과도 같았다.

"저는 자유라는 것이 보고 싶었습니다."

"...자유?"

"예. 자유요."

볼에 음식을 양껏 담고 오물거리던 입이 애써 그것들을 삼킨후 다시 말을 이었다.

"어차피 황금여우, 오메가로 태어난 이상 그 처지는 같다고 들었습니다. 허나, 저는 그것이 싫습니다. 그래서 자유라는 것이 보고 싶었습니다."

"....자유가 무엇이냐."

"...그것은 바다라고 들었습니다."

"...누구에게?"

"...에이스요."

"에이스?"

"벗입니다. 저와 함께 도망을 했던 벗이요. "

"그 아이도 너와 처지가 같더냐."

"아닙니다. 아니었는데, 저를 돕겠다며 함께 도망을 쳤습니다. 허나, 제가 이리되어, 지금은 어찌 되었는지..."

"....."

"....족장님."

"그래. 말하거라."

"저는, 어찌 되는 것입니까?"

"...."

"저는 어찌 되어도 상관 없습니다. 뜻대로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자유니까요."

"....."

사보의 말에 드래곤이 그를 가만히 보다 웃으며 말했다.

"내 인생에 삼분의 일도 채 살지 못한 네가 나보다도 더 현자로구나."


***


"성정이 고와보이는 아이입니다. 그냥 받아들이심이..."

"반려로 삼으시지 않아도 혹, 키우셔서 후계로 삼으셔도..."

"히그마가 보낸 아이입니다! 아이라도 간자가 될 수 있는 법! 차라리 그 목을 쳐 없애시는 것이."

"조용, 조용."

"...."

사보를 살포시 재워놓고 드래곤이 방을 빠져 나오자 드래곤의 측근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어 웅웅 댔다. 혹시나 하여 처소 뒤에 측근들을 둔 드래곤이었다. 어찌하실 건지요? - 드래곤의 뜻을 물으며 측근이 건넨 약병을 바라보여 드래곤은 생각에 잠겼다.

"저아이를 내치지는 않겠네."

"네?!"

"설마..."

"이제 막 열 살인 아이이다. 여기서 내가 저 아이를 내치면 아이는 더 험한 꼴을 당할게야."

드래곤의 말에 다들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 입을 다물었다.


***


"어찌 될까요?"

"내치지 못할것이다. 드래곤은 잔인하지 못하고, 아이에게 약하니까."

"그렇다면 성공이 아닙니까."

"그런거지, 그런게지. 극상의 몽마와도 같다지. 어린 황금여우 오메가는. 곧 그 아이에게 빠져 온갖 추태를 부리는 꼴을 볼 수 있을것이야. 아이 단속은 잘 하였느냐."

"예. 제 부모의 목이 달려있으니, 우리의 뜻을 잘 따를 것입니다."

"그래, 좋다."

이미 대대로 족장을 해온 집안이다. 이젠 바뀔때도 되었지. - 히그마가 촛불너머로 욕심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


"...핫! 아, 이, 이런...드래곤씨보다 먼저...잠이 들면..."

"괜찮다. 괜찮아. 피곤했을테니."

어스름한 새벽, 선잠에 들었다 퍼뜩 깬 사보를 드래곤이 보듬어 안았다. 거대한 품이 따뜻하고 포근했다. 성정이 훌륭한 분이라는데, 과연 그랬다. 얼마 남지 않은 새벽, 아마 드래곤을 만난 것은제 인생의 가장 아름다움 밤이 아닐까 싶었다. 그러니 그런 드래곤에게 누가 되면 안될 일이었다. 사보가 입을 열었다.

"손에 드신 것,"

"...?"

"그것을 저 멀리에 버리십시오. 이 요는 깨끗하게 내일 아침 해를 맞아야 합니다."

"...."

"족장님. 저는...."

"함정이겠지."

"?!?!!?"

"무엇이 널 그리 만들었는지는 내 알길이 없으나, 네가 내 인생의 함정인 것은 안다."

"....역시...그리하면..."

"하지만 난 너를 내치지 않을 것이다."

따뜻하고 곧은 눈이 사보의 동공에 맺혔다. 붉은 흉터와 성난 인상의 사내. 허나 마음은 그 어떤 누구보다 따뜻한 이 사내. 사내의 손에는 순결을 상징하는 비둘기의 피가 담긴 약병이 있었다. 이것을 새하얀 요에 뿌려 붉은 자욱을 내어 내보내면 사보는 그의 반려가 될 것이다. 비록 아직 첫 발정기도 오지 않은 아이였지만 순결을 잃고 남편의 반려가 되는 부인네들과 다름 없는 그런 것이었다. 드래곤이 약병을 열고 병을 기울였다. 사보가 놀라 눈으로 그것을 좇자, 그것은 깨끗하고 새하얀 첫눈 쌓인 땅과 같은 요에 붉은 꽃잎처럼 흩어졌다. 드래곤이 말했다.


"난 너에게, 자유를 보일 것이다."


그렇게 사보의 인생, 첫 자유의 초야가 어스름한 새벽을 맞아 끝이났다.



Posted by 김스팸팸